명상이라고 하면 대개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는 초보 명상반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초보 명상반이 있는 토요일 9시 고요한 위산사 내에서 때때로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발목을 부여잡고 고통에 못이겨 비명을 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픔을 참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엉덩이를 이리저리 들썩입니다. 이런 모습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것을 명상이라고 하는지 황당합니다.
선사님은 명상을 하기 위해 먼저 결가부좌에 익숙해질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결가부좌의 통증으로 인한 아픔을 참으라고 합니다. 처음 결가부좌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과제는 아픔이 없을 때까지 결가부좌로 1시간을 앉는 것입니다. 매순간 발목과 무릎이 바늘로 찌르듯이 아픕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가부좌의 고통이 산고의 고통보다 더 심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억지로 무리하게 아픔을 참아야 하나요? 결가부좌 자세는 수행의 기반을 닦기 위한 것입니다. 마치 빌딩을 짓기 전에 먼저 튼튼한 기반을 닦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기반을 닦느냐에 따라 층수가 낮은 집을 짓기도 하고 고층 빌딩을 짓기도 합니다. 결가부좌는 높은 빌딩을 짓기 위해 기반을 닦는 작업입니다. 깨달음이라는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그 준비 작업이 바로 결가부좌입니다. 결가부좌가 익숙해지면 다른 자세보다 선정에 더 깊이 오래 들 수 있습니다.
사실 결가부좌할 때의 아픔을 좋아해야 합니다. 통증은 몸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가지 병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병은 뼈, 골수에 깊이 침투해있습니다. 점점 병이 악화되면 그것이 비로서 표면에 드러나서 의사를 찾아가지만 이미 병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입니다. 결가부좌를 하면 기가 강해져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됩니다. 무릎과 발목이 아프다면 그 부위가 치유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함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극복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런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직면하고 극복함으로써 인생에서 부딪치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가부좌 명상은 또한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일정 시간 결가부좌로 앉겠다고 결심을 하지만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늘 내면의 갈등에 못이겨 다리를 풉니다. 결가부좌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자신의 실패를 매일매일 직면하고 계속되는 실패를 통해 자연스럽게 겸손해집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봄으로써 다른 사람의 실패를 비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 인내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계속되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때 내면은 더 단단해지고 빨리 진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사님은 사람들에게 하기 어려운 것, 힘든 것을 하게끔 합니다. 내 능력에 부치는 힘든 일들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힘들고 아프지만 계속해서 기꺼이 고통을 참으며 결가부좌를 합니다. 아픔을 인내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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